목회 칼럼
출발지점
작성일시 : 2024-07-2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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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믿는 성도들이 하는 신앙고백이 실생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 신앙고백을 하는 신자와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 비신자간에 살아가는 데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이 보여 진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나는 것은 주일날 성경들고 교회에 가는정도, 벌벌떨면서 헌금하는 정도, 음주를하고 흡연을하고 술집에 가면서 약간 찔리는정도 밖에는 두드러진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믿으며 살아야지...’ 마음에 다짐을 하지만 정작 살아갈때는 맘먹은대로 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떻게 사는 것이 성경말씀대로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는 것이 신앙생활인거 같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하면 사람의 출발지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살인하지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해칠수가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살인하고 싶은 사람을 살인하지 않는 이유가 된다면 그건 기독교가 아니라 도덕이고 윤리인것입니다. 오히려 불교는 한술 더떠서 살생유택을 가르칩니다. 또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가르칩니다. 이가르침이 옳습니까? 틀립니까? 옳습니다. 그럼 왜 옳다고 생각하시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부모를 공경하라 가르치는 것은 진리입니다. 제아무리 미개한 종족이라 할지라도 제 부모를 공경하라 가르칩니다. 구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요즘엔 제부모를 공격하는 천륜범죄가 늘어나고 있지만요...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성경을 이해하는데 우리의 출발지가 어디인지 애매모호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살인하지말라, 도적질하지말라, 네부모를공경하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타종교에서도 살인하라, 도적질하라, 네부모를 공격하라고 가르치는 종교는 이세상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나 타종교나 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믿고있고 신앙하고 있는것이라는 말입니까? 만약 기독교나 타종교가 가르치는 내용은 같으나 믿는 대상만 다른것이라고 한다면 결국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이나 캐톨릭에서 말하는 연옥이나 무슬림에서 말하는 내세나 같다는 것이라는 말입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종교 다원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믿는 것이니까 그 대상이 하나님이던 석가모니던 마호멧이던 하느님이던 도,기,요가,마음수련등등 모든 종교가 같을 수밖에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종교가 가르치고 있듯이 살인할수도 살인않할수도 있고, 부모를 공경할수도 부모를 공격할수도 있는 즉 이것을 선택할수도 있고 저것을 선택할수도 있다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이 살인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어 나는 지금까지 사람을 살인한 적이 한번도 없는데?’ 정말입니까? 도적질 한적이 없으시다구요? 부모를 공격해 보신적이 없으시다는 말입니까? 정말요? 그럴리가요.... 무슨 목을 조르고 팔 다리를 짤라야 살인 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성경은 사람들의 시작이 이미 살인한자요 거짓말쟁이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인하고 않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사람을 죽일수가 있어’ 그래서 살인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시니까 않하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없어져야할 인간인데 하나님 무슨 이유인지 그냥 놔 두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냥 놔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인하지 말라’ 하신 말씀의 진위인 것입니다. 제가 만약 그분이라면 싹쓸어 버리고 싶은데 하나님이 그냥 놔두시니 어쩔수 없이 참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하십니다. 원수를 보면 심장박동이 빨라지는데 참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참으라고 하셨기에 참는 것입니다. 거룩해져서 참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자신이 거룩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날 내 주인 되어버리셔서 내 머리를 지긋이 밟고 계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된 이후부터 이를 악물고 참고 또 참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를 갈때마다 그분께서 웃으시며 ‘원수를 사랑하라’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제게 이런 믿음이 생기기 시작 했습니다. ‘언젠가는 사랑하게 되겠지’ 하는 믿음입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지만 그분께서 하라시는데 언젠가는 사랑하게 해 주시겠지요. 이것이 성경이 요구하는 신앙의 내용인 것입니다.